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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동백(나무) 관련 전설 / 산타나 산행이야기

by 솔나리와 땅나리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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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관련 전설들

 

 

 

< 울릉도 동백전설 >

울릉도 어느 마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일이 있어서 배를 타고 육지로 가게 되었다.

하루 이틀 지나가고 남편이 돌아온다던 그날이 다가왔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남편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마침내 자리에 드러눕게 되었고 이웃사람들이 정성껏 보살폈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숨을 거두면서 아내는 말했다.

 

"내가 죽거든 부디 남편이 타고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 주세요."

마을 사람들은 죽은 여인의 넋을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장사를 치르고 돌아와 보니 그 집 앞뜰에 있는 후박나무에 수없이 많은 흑비둘기 떼가 날아들어 우는데, 그 우는소리가

 

"아이 답답해. 열흘만 더 기다리지넉넉잡아 열흘이면 온다. 남편이 온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원수야. 원수야, 열흘만 더 일찍 오지 넉넉잡아서...."

라고 하는 것처럼 들려 마을 사람들은 기이하게 생각하였다그날 저녁에 육지로 떠났던 남편이 배를 타고 돌아왔다.

남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는 무덤으로 달려가 목놓아 울었다.

 

"왜 죽었나, 1년도 못 참더냐열흘만 참았으면 백년해로하는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흰 바다 원수로다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하지."

남편은 아내 생각에 매일같이 무덤에 와서 슬프게 울다가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 날 실컷 울고 돌아서려는데 아내의 무덤 위에 전에 못 보던 조그마한 나무가 나 있고 그 나뭇가지에 빨간 꽃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피어난 꽃은 하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고 피어있었다. 이 꽃이 바로 지금 울릉도 전역에 걸쳐 살고 있는 동백꽃이라고 한다.

 

 

< 대청도 동백전설 >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파도에 휩쓸려 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간호를 해 준 대청도 처녀 덕분에 기력을 차리게 되었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하였고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보내던 중 밤마다 꿈속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이는지라 걱정이 되어 고향에 다녀오기로 했다.

"꿈속에 부모님이 자주 보여 몹시 걱정이 되니 내 금방 다녀오겠소."

"조심해서 얼른 다녀오세요. 그런데 부탁이 하나 있어요."

남편의 고향에 동백꽃이 많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에게 돌아올 때 동백꽃 씨앗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백기름으로 곱게 단장한 자신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 떠난 남편은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또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고향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고 있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믿고 기다렸다. 날마다 아내는 바닷가로 나가서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슬픔을 달랬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결국 병이 나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아내는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남편은 부모님을 두고 차마 혼자 떠나올 수가 없어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어느새 2년이 흘렀던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동백 꽃씨를 주머니 가득 담아 가지고 남편은 대청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내가 열흘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남편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다.

남편은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을 했다. 남편이 무덤에 엎드리는 순간, 주머니에 있던 동백꽃 씨가 후드득 쏟아졌다.

 

이듬해 아내의 무덤가에는 동백나무가 싹을 틔웠고, 아내의 그리움을 토해내듯 해마다 이른 봄이면 붉디붉은 동백꽃이 피어났다고 전해진다출처 : 동백나무 (한국민속식물, 1997. 2. 15., 최영전)

 

 

 

 

< 오동도 동백전설 >

신돈의 개혁 정치에도 고려는 허망하게 이성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고려 유신의 한 부부가 오동도로 귀양을 왔다. 그 부부는 땅을 개간하고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에 도둑이 들었다. 혼자 집안일을 하던 아내는 재물을 빼앗기고 떨고 있었다. 급기야 도둑은 아내의 몸까지 요구하는 것이었다. 도둑이 허튼짓을 하는 사이, 어부의 아내는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간 방향으로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그러나 끝내 붙잡히려 하자 이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날이 저물 무렵, 고기잡이에서 돌아온 남편은 피를 흘린 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린 아내를 발견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정성을 다해 오동도의 정상에다 아내를 묻어 주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무덤에는 여인의 선혈처럼 붉은색의 동백과 절개 같은 시누대가 자라났다고 한다. 이 시누대 때문에 죽도(竹島)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 시누대로 화살촉을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 : 오동도 전설[梧桐島傳說]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무안 화설당 동백나무 목침 >

천연기념물 83호로 지정되었던 400여 년 된 동백나무 노목은 해제되어 버렸으나 이 나무가 서있던 전남 무안군 청계면 사마리의 화설당(花雪堂)에는 기이한 전설을 지닌 동백나무 목침(木枕)이 있다.

옛날 이 동백나무 밑에 연못을 파려고 파헤치다 동백뿌리가 마치 용모양같이 기이하게 생긴 것이 있어 그것을 잘라 베개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용침(龍枕)이라 했다 한다.

 

이 용침은 이 마을의 주손(主孫)만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이 베고자면 꿈자리가 사나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정(日政) 때 일본사람이 탐내어 가져다가 베고 잤는데 전설대로 꿈자리가 사나워 다시 돌려주었다는 이곳 유씨문중(柳氏門中)의 보물이었는데 황금에 눈이 어두운 후손 누군가가 골동품으로 팔아버려 지금은 전설만이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출처] 동백나무 (한국민속식물, 1997. 2. 15., 최영전)

 

 

<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 동백산>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에 있는 동백산의 전설인데, 옛날 남국의 청년 한 사람이 두메 산골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마을의 어느 소녀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장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얼마 가지 않아서 슬픈 운명이 닥쳐온다.

이 청년이 그 고을을 멀리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달밝은 봄날 저녁, 가까이 있는 동산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미어지는 이별의 슬픔을 나누었다.

소녀는 청년의 옷깃을 잡고 슬픔을 억누르면서 속삭였다.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고향은 남쪽 나라 따뜻한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다음에 오실 때는 동백나무의 열매를 꼭 갖다 주세요. 그 나무의 열매 기름으로 나는 머리를 예쁘게 치장하여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소녀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오. 많이 가져다가 당신에게 드리겠소하고

굳은 약속을 남긴 청년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그곳을 떠나 바다 건너 멀리 남쪽 나라로 떠나 버렸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가을 바람이 일고 기러기가 날기 시작했다.

소녀는 혹시나 청년에게 소식이 있을까 하여 매일 문 앞에서 먼 바다 쪾만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는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손을 꼽아 헤아려 보니 떠난 지 어느 새 만 1년이 지나 있었다.

봄날의 달빛은 헤어지던 그 날과 다름없이 미쳐오건만 한 번 떠나간 임은 소식조차 없는 것이었다.

소녀는 지나간 날들의 회포를 가슴 속에 보든어

그 동산을 헤매면서 돌아오지 않는 청년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죽은 줄도 모르고 청년은 그리움에 부푼 가슴을 안고 이 산골로 소녀를 찾아왔다.

그러나 청년의 부푼 가슴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된 청년은 미친 듯이 소녀의 무덤 앞으로 달려가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그러나 한번 간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청년은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면서 소녀를 위해 갖고 온 동백나무 열매를 무덤 주위에 뿌리고 다시 멀리 떠나 가 버렸다.

 

그 이후 청년에 의하여 뿌려진 동백나무 열매는 싹이 트고 줄기가 나서 마침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동산 전체가 동백꽃으로 불타는 듯이 빨갛게 덮였다.

죽은 소녀의 넋이 한이 되어 그 한이라도 푸는 듯이 봄이면 동백 꽃으로 동산을 붉게 물들인 것이었다.

출처 : 동백 (문화원형백과 한의학 및 한국고유의 한약재,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 중국의 동백꽃 전설 >

아주 먼 옛날 어느 아리따운 시골 처녀가 앓아 누워 있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약초를 캐려고 신비한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처녀는 골짜기의 기묘한 풍광에 취했다. 많은 약초를 캐다보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깜박 잊어버렸다.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나면 계곡에 내려가 흘러내리는 물을 마셔가며 약초를 캐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처녀는 이상하게도 자기 배가 불룩하게 불어나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의 이웃들은 그녀가 세상에서 하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고 뒤에서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수군거렸다. 너무도 분이 치밀어 오른 처녀의 아버지는 딸을 집에서 쫓아냈다. 집을 떠나가는 딸에게 어머니는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넘겨줬다. “넌 어디로 가든 간에 이것을 몸에다 챙기고 다녀라. 그래야 우리는 언젠가 꼭 만나게 될 거다.”

 

다른 데로 갈 곳이 없게 된 처녀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산곡으로 다시 돌아와 생룡동굴에 거처하게 됐다. 기일이 지나가면서 산곡에는 아름다운 동백꽃이 피어 나 오색찬란한 빛을 뿜고 귀중한 보물인양 마치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부르는 듯했다. 하지만 처녀는 자기가 가는 곳마다 왜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어머니가 넘겨준 주머니를 헤쳐 봤다. 그 속에는 동백꽃 씨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진 처녀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처녀는 어머니가 사방으로 다니면서 자기를 찾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때 처녀의 어머니는 신비한 산곡으로 찾아왔다. 어머니는 여러 곳에 동백꽃이 자라나 피어난 것을 보게 됐다. “딸애야 너 지금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냐? 이 어미는 밤낮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 어머니의 외침소리는 신비한 산곡에 울려 퍼지면서 메아리쳤다. 그때 처녀는 작은 용 두 마리를 낳은 후 세 번 째 용을 낳고 있었다. 어머니의 외침소리가 산곡에 메아리치자 그 소리에 놀란 작은 용 두 마리는 급하게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러자 온 대지가 마구 흔들리면서 어두워지더니 대지에 큰 비가 억수로 내리 부었다. 너무 놀란 처녀는 세 번째로 낳는 작은 용을 절반만 낳고는 그만 신비한 산곡에서 사라졌다. 그 뒤에 이 산곡에는 생용동굴이 생겨났다.

 

 

 

 

< 동박새 전설 >

이 동박새 전설은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전설이지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유래한 전설인지 잘 모른다. 전설의 내용과 주제로 봐 우리나라 전설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 전설을 중국의 전설로 보는 견해가 있다.

 

우리나라 텃새 중 동백나무와 슬픈 전설을 간직한 새가 있다. 옛날 중국의 어느 나라에 포악한 왕이 살고 있었는데, 이 왕에게는 자리를 몰려줄 후손이 없었으므로 자신이 죽으면 동생의 두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게 돼 있었다. 욕심 많은 왕은 그것이 싫어 동생의 두 아들을 죽일 궁리를 했다. 동생은 이를 알아차려 자신의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대신 아들을 닮은 두 소년을 데려다 놓았다. 이것마저 눈치 챈 왕은, 멀리 보낸 동생의 아들 둘을 잡아다가 왕자가 아니니 동생에게 직접 죽이라고 명령했다. 차마 자신의 아들을 죽이지 못한 동생은 스스로 자결해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갔고, 두 아들은 새로 변해 날아갔다고 한다. 동생은 죽어서 동백나무로 변했다. 이 나무가 크게 자라자 날아갔던 두 마리 새가 다시 내려와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새가 바로 동박새라는 전설이다.

동박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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