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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동백관련 고전 문학

by 솔나리와 땅나리 2024.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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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동백꽃을 읊은 문학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동백꽃이 결코 명화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주로 남해안이나 서해안에만 자라고 있어서 이 꽃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백꽃을 볼 수 있었던 지방에서는 이 꽃을 극찬하고 있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문학 작품속의 동백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면 동백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육(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 일부 >

동래의 동백정은 동국에서 이름을 독차지하였다. 주위 몇 리까지 모두가 동백나무, 곧 화보()에 이른바 산다화이다.

눈속의 푸른 잎이며 붉은 꽃잎이 화려하고, 동남에 큰바다가 가로놓여 뛰어난 절경은 비길 데 없다.

< 고려시대 이규보  〈동백화()〉, 《동국이상국전집》 >  최초로 동백을 읊은 시

복사꽃 오얏꽃 비록 아름다워도 
부박한 꽃 믿을 수 없도다 
송백은 아리따운 맵시 없지만 
추위를 견디기에 귀히 여기도다 
여기에 좋은 꽃 달린 나무가 있어 
눈속에서도 능히 꽃을 피우도다 
곰곰 생각하니 잣나무보다 나으니 
동백이란 이름이 옳지 않도다 

 

도리화(桃李花)는 처음부터 동백에 비할 바가 못된다. 송백은 추위를 견디어 낸다는 점에서는 동백과 같이 귀하게 여길 만하다. 그러나 송백에게서는 결코 겨울에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동백은 눈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동백은 잣나무보다는 더욱 사랑받아야 할 한 단계 위의 귀중한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잣나무와 같은 서열로 인식되기 쉬운 '동백=겨울 잣나무'란 이름을 붙였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동백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것이다.

 

< 성삼문, 〈설중동백()〉, 《성근보집()》 >

고아하고 조촐함은 매화보다 낫고 
아리따움은 너무 지나칠 정도인가 
이 꽃이 우리나라에 많으니 
봉래라는 이름이 마땅하도다 

 

위 시는 〈비해당사십팔영〉의 시제에 따른 성삼문의 〈설중동백〉이란 제목의 시다. 동백꽃을 읊은 시 가운데는 이와 같이 눈속에서 피어나는 동백꽃을 상찬하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이 시에서도 동백을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에 비유하여, 그 고고하고 아리따움에 있어서는 오히려 매화에 앞선다고 상찬하고 있다.

 

< 신숙주(), 〈반개산다()〉, 《보한재집()》 >

동백이 반이나 피어 고아한 모습 들어냈는데 
아직 세모라 봄빛을 받지 못했도다 
이는 으레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이지만 
풍상을 겪고서도 맑은 자질 뽑냄이 없어라 

 

세모에 아직 봄빛의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도 풍상을 이겨내고 붉은꽃을 반이나 피워냈으면서도 전혀 오만스럽게 뽐내지 않고 고고한 모습을 지닌 동백꽃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 작자미상 고시조 >

어와 보완제고 선사님 보완제고
저러틋 고은 양자 헌 누비의 싸이였는고

납설중() 동백화() 한가지가 노송 () 속에 들미라.

 

스님의 고운 얼굴이 누비에 싸여 있는 모습을 노송 속에서 납설에 덮여 있는 한 가지의 동백꽃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납설은 납일, 즉 동지 뒤에 셋째 술일(日)에 내리는 눈을 말한다.
 

 

 < 윤선도, 추자도 유배지에서 >

동백화 피온 꽃은 눈속에 붉어시니
설만장안(滿)에 학정홍() 의연()하다.
어끄제 그런바람 간밤에 이런눈에 높은절 고은빛을 고침이 없어시니
춘풍도리화()는 도로혀 부끄럽다.

 

고산 윤선도가 유배지 추자도에서 읊은 노래이다. 동백꽃이 눈속에 피어 있는 남해 고도(孤島)의 정경이 잘 그려져 있다.

 

< 울릉도 민요, 《전통문화의 맥》 >

동백꽃 향기롭다 바구니 옆에 끼고 / 이 강산 이 섬 속에 봄이 왔네
동백꽃 필 무렵 다시 오마 하더니 / 꽃지고 열매 딸 때도 오지를 않네

 

울릉도는 아주 좁은 지역이다. 이 좁은 지역에서 자란 처녀 총각들은 아침 저녁으로 만나는 사이에 객지 구경을 할 사이도 없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무엇엔가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 애정의 표시로 변한다. 그 중에는 결혼에 성공한 경우도 많았겠으나 실연의 아픔도 맛보아야 했는데 위의 노래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울릉도 망향봉 동백꽃

 

 

< 임동권, 《한국민요집》 >

붉은 댕기 밤물치마 삼단머리로 / 동백따는 아가씨 고운 아가씨
동백따서 단장하고 시집갈라나 / 택일단자 받아놓고 동백을 따니
에헤라 달밝은 밤에 / 뒷동산 동백꽃이 에헤라 좋구나

 

< 임동권, 《한국민요집》 >

1. 물새울고 파도는 치는데
섬 새악시 노래 소리
2. 아침마다 피는 동백꽃을
한아름 안아다가
저 금강산에 심어보자
(후렴) 가세 가세 동백따러 가세.  

 

민요 〈동백타령〉에서는 동백이 열면 여인들이 바람이 난다고 했다. 옛 여인들은 동백기름으로 머리카락을 단장했고 동백이 열 때는 춘삼월이어서 여인들 가슴이 설레이는 절기인 데서 온 표현일 것이다.

 

< 민요 동백타령 >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 건넛집 숫처녀 다 놀아난다. < 강원도 지방 >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 산골에 큰애기 떼난봉난다.

열라는 콩밭은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 청량지방 >

 

현대시에서 동백꽃을 읊은 시는 피맺힌 가슴의 한이나 정열적인 사랑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동백꽃이 처절하도록 붉은 데서 오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진도 첨찰산(2015.3.7.)

 

 

< 유치환, 〈동백꽃〉(제1절)  > 

목놓아 울던 청춘이 / 꽃피어
천년 푸른 아래 /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대 위하여서는 /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리 없는
아, 나의 청춘의 피꽃

 

동백꽃은 푸른 하늘아래 피빛처럼 붉게 피어난다. 붉게 타는 듯한 동백꽃은 정열을 다 받쳤던 청춘의 화신이다. 동백꽃처럼 불타는 사랑을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 정훈, <동백> >

백설이 눈부신 /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 사모치는 정화()
그 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 애태워 피는가

 

< 김유정(金裕貞)의 단편소설에 1936년 발표된 〈동백꽃〉 >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있는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기서의 동백꽃은 '노란 동백꽃'으로 나와 있어 진짜 동백이 아니라 생강나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 프랑스의 루시앙 교 피엘 지바세는 그의 《꽃의 역사》 >

동양의 꽃 동백은 서양에 가서도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프랑스의 루시앙 교 피엘 지바세는 그의 《꽃의 역사》란 책에서 동백이 유럽에 상륙한 이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나무를 18세기 말에 아시아에서 가져온 사람은 예수교의 선교사였던 카멜(Kamall)로 알려져 있다. 처음 들어온 것은 홑잎의 꽃이었으나 겹잎의 꽃은 1794년과 1810년 사이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동백의 '아름다운 치세()'가 시작되었다. 대유행은 19세기와 함께 일어났다. 그 최성기에 우리나라의 해안지방에서 겨울의 제전()의 여왕은 열광자와 숭배자를 만들었다. 문학에서는 A.뒤마의 1848년의 소설과 1852년의 희곡 《동백 아가씨》[일본에서는 '춘희(椿)'라 하였음]에서 이 식물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었다.

 

위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동백나무는 동양의 꽃나무이지만 서양에 소개되어 많은 인기를 모았고 그 정열적인 붉은 색깔의 꽃은 많은 노래와 시와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뒤마(Dumas fils)의 소설 〈동백 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와 이를 변형하여 오페라로 한 베르디(G. Verdi)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마르그리트는 1840년대의 아름다운 프랑스의 창부 마리 디플레시를 모델로 한 소설 〈동백 아가씨〉의 주인공 이름이다. 19세기 초에는 동백꽃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었으므로 뒤마는 그 소설을 쓰면서 여주인공을 위하여 동백꽃을 선택했던 것이다. 마르그리트는 향기 있는 꽃을 가지면 기침이 나기 때문에 항상 향기 없는 동백 꽃다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한 달 중 25일간은 흰 동백꽃을, 그리고 나머지 5일간은 항상 붉은 동백꽃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뒤마는 "이렇다 할 이유는 없지만 이것이 나 자신인 증거예요"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리하여 당시의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동백꽃 붐이 일어났다. 동백꽃 붐이 〈동백 아가씨〉를 낳게 했는지, 아니면 〈동백 아가씨〉가 동백꽃 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동백꽃 붐은 바로 제정(帝政) 러시아로 흘러들어 갔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白痴)〉에서는 소설 〈동백 아가씨〉를 읽고 무도회용(舞蹈會用)으로 동백꽃을 구하고자 광분하는 상류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출처] 동백꽃과 문학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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